2011년 7월 24일 일요일
오랜만에 팔공의 품속으로 들어간다.
그러지 말자, 말자해도 늘 시간에 쫒기고, 세월에 쫒기며 사는게 일상이 된 지 오래다.
늘 상황을 지배하며 살고 싶고, 흐르는 시간을 지배하며 살고 싶은게 내 맘이지만 인간사, 사람의 일이란게 어디 그렇던가?
모든거 마음먹기 달렸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속세의 군상들과 지지고, 볶다보면 삶의 주도권을 세월에 내주고 맥없이 살고 있다.
무릇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피로라는거는 육체의 그것만이 아니라 대개가 마음의 스트레스에 그 원인이 있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심리의 피로를 풀어야 비로소 몸의 평안도 얻을 수 있거늘...
마음은 더 바빠지고, 쪼글어 드는거 같은데...
이런 나의 마음을 위로해 줄 수있는 것은 오직 자연 --- 엄마 품같은 팔공으로 간다.
803번 버스를 타고 갓바위 못미쳐 천성암 입구에서 내렸다.
갓바위로 올라가는 길은 확장공사가 아직 덜 끝났다.
천성암으로 가는 비포장도로는 산길이라 길은 넓지만 제법 가파르다.
차 다니는 길 말고 다른 산길이 있나 싶어 파고 들어보니 묘지로 가는 길이다.
산길엔 자주 묘지로 가는 길에 속는 경우가 더러 있다.
풀잎에 맺힌 빗방울들로 바짓가랭이와 신발 겉은 벌써 젖었다.
힘들게 다시 비포장 도로로 올라서니 굽이굽이 돌고도는 길이 벌건 쪼대 흙길이다.
스님이나 신도들도 현대를 사는 사람들은 모두 걷는 고행이 싫고 차 아니면 안된다. 산길을 걷는건 오로지 산객의 몫이다.
높은 습도와 후텁지근한 날씨속에 길아닌 길을 걸으니 벌써 땀이 주르륵 흐른다. 바위가 보이길래 잠시 땀도 닦고 다리 쉼을 하고...
천성암 입구다.바위위에 붙여놓은 하늘천(天)자가 대숲에 가렸다.
너른 길이 없다면 다리품 팔아 오를이가 많지 않을 옛절인 거같다.
등산작대기로 비에 무너진 대숲을 헤치니 글씨가 나온다.
뒤쪽으로 본 마당바위
요사채를 지나면 불사중인 건물과 뒤로 '독성각'이 나온다.
오르던 길가 펼침막에 천삼백년 고찰이라고 적어놓았더만 어디를 봐도 모르겠더니 요 건물만이 그것을 말해준다. 의상대사가 창건을 했다니...
관음전도 현대의 산사들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다.자연이 빚은 거대한 바위벽에 둘러 쌓였다.
한 중년의 처사님이 홀로 기도를 하고 있다.
관음전 앞의 너럭바위(마당바위)에 올라보면...
저 앞으로 와촌들녘이 내려다 보여야 하는데 안개에 가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무정한 세월과 함께 이 곳에 지나간 산객들의 발길만이 아련한 옛추억과 함께 남았을 뿐...
마당바위 위에서 본 천성암 전경
독성각 뒤에서...
절뒤로 난 길을 따라 지능선에 올랐다. 비가 오는지 풀잎들은 물방울을 함뿍 머금고 있다.
거미줄만이 산객의 얼굴과 몸을 감쌀뿐 경치는 어디에도 없다. 앞만보고 걷는 길이다.
원추리 --- 산중 외딴곳에 이쁜 자태를 하고 앉은 꽃들만이 반겨준다.
갈림길 --- 왼쪽으로는 영천과 경산의 경계산길로 가는 길이고 오른쪽은 방금 올라온 천성암으로 가는 길
지금부터 동봉까지는 경계산길이다.은해봉까지는 경산과 그이후로는 대구와...
사방을 돌아보지만 보이는 건 가까운 푸르름과 안개뿐이다. 조망은 포기했다.
죽은 나뭇가지들에는 이런 거미줄이 많다.과학원리가 있는건가?
기기암으로 갈라지는 길이 나온다.
기기암 능선을 쳐다보지만 역시나 희뿌연 안개에 쌓였다.
자연이 깎아놓은 바위덩어리들이 또 나의 위안이다.
줌
여기가 원효암능선과 기기암 능선이 갈라지는 삼거리다.
큼지막한 바위들이 나타나고,
조망바위 곁으로도 가 보지만 보이는 건 안개바다뿐이다.
갓바위주차장 가는 길이란 새 이정표가 하나 달려있다.
편안한 흙길도 가끔은 나를 위로해 주는데...
시간의 나이테를 촘촘히 두르고 울울이 솟은 소나무 숲 길 --- 오늘같은 날에는 금상첨화 아닌가...
팔공산 소나무 숲길은 이 길만한데가 별로 없다고 자부한다.
감나무식당에서 올라오는 길과 만난다.
숲은 꽉 막혔다.
여름속의 가을
은해봉 직전의 조망바위
갓바위가 굽어보일 자리에 서보지만 여전히 오리무중
은해봉이다.
은해봉에서 헬기장으로 내려가는 길 --- 왼쪽으로 팔공컨트리클럽이 있는 곳에도 오리무중
이 사진 찍고 조금 내려가니 신음소리가 들린다. 얼른 내려가다보니 부부산객중 아저씨가 내려가다 넘어져 어깨 탈골이 되었단다. 옆의 아주머니는 어쩔줄 몰라 사색이 되어있고, 아저씨는 전에도 이런일 몇 번 있었는데 혼자서 끼워넣었단다. 그런데 오늘은 안된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나도 그런 상식이 없는지라 둘이서 같이 밀어 넣어보려고 하는데 아저씨 신음소리 들으니 '아 ~ 도저히 못하겠다'
그래서 119에 신고 했다. 119에서 응급조치로 팔을 고정시키라기에 내 베낭에서 압박붕대 꺼내어 감싸주고 안전한 데까지 내려 온다.
종주능선 28번이 있는 헬기장이다. 동부소방서 3번구급함이 있는 곳이다.
이제 팔공산 다니면 이곳은 못잊을 것이다.
둘을 남겨두고 나는 내 길을 간다. 부부의 고맙다는 말을 발등으로 흘리며 다시 오름길이 시작된다.
힘든길이지만 발걸음은 가볍다.
운부능선이 갈라지는 종주능선 31번길
삿갓봉 정상부
맑은 날이라면 팔공의 주능선과 정상부가 훤히 보여야 할 삿갓봉 전망대에도 서 보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발 아래의 폭포골조차도...
폭포골로 갈라지는 바른재
바른재 위의 헬기장에는 이른 시각인데도 몇몇 산객들이 점심식사를 하고 있다.
나도 몇 십분 더 걸어 신녕재 직전 봉우리에서 다리 쉼겸해서 점심상을 폈다.
신녕재
산수국
숲길을 걸을때는 몰랐는데 엷은 빗방울이 떨어지고 있다. 솔가지에도 매달리고...
동화사가 내려다 보여야할 전망바위 위에 서봐도 보이는 건 없다, 짙은 안개 밖에는...
해골(이빨)바위
염불암 갈림길
거친 숨을 몰아쉬며 염불봉으로 오른다.
드디어 동봉
여름 팔공산 --- 나무들은 푸르름으로 싱그러움을 더하고 비안개에 쌓인 치산계곡쪽으로는 신비로움을 더하고 있다.
정상석에서 눌러앉은 산객들의 시덥쟎은 농담을 흘려 들으며 하산길에 든다.
철탑삼거리
저기 막걸리 파는 곳 --- 한 잔 생각이 있었지만 베낭에서 돈꺼내기 귀챦아 그냥 간다.
지칠때도 됐는데... 마음 내려놓고 잠시 쉬어도 되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 곳이다.
바람과 물이 깎아놓은 기암괴석, 바위사이로 흐르는 물줄기가 그림이나 사진에서 보던 그 장면이다.
암벽바위
또다른 암벽훈련장
수태골 입구 --- 약 6시간 20분정도 걸렸다.
수태못
수태못을 병풍처럼 펼쳐 감싸고 있는 팔공산 정상부도 자욱한 안개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산과 숲이 나를 감싸앉는듯한 계절, 여름 --- 그 여름의 팔공산에 오랫만에 올랐다.
가슴깊이 들어차 있던 걱정, 근심, 백팔번뇌 모두 수태골따라 흐르던 물줄기와 함께 말끔히 씻겨 내려 갔으면... 그리고 내일은 맑은 정신이었으면...<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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