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5월 15일 일요일
한동안 산을 못갔다 싶었는지 내몸이 내게 투정을 한다.
안내산악회를 따라 지리산 반야봉이나 갈까했는데 인원이 없어 취소란다.
이왕에 지리산으로 맘먹었던거, 바래봉 철쭉이나 보자싶어 아내와 같이가기로했다.
차를 타는곳까지 가는게 좀 성가시지만 차를타면 자가운전때보다는 훨씬 편하다.
늘 그렇듯 산아래엔 흐드러지게 봄이왔다.
차창 밖으로는 꽃망울을 맺은 아카시 하얀꽃들이 산언저리에서 가지가 찢어질듯 흐벅지게도 달렸다.
일행을 태운 버스는 거창휴게소에서 잠시 쉬는것 밖에는 지리산 둘레길 2구간이 끝나고 3구간을 시작하는 인월을 거쳐 곧장 흥부골자연휴양림 입구까지 달려왔다.
(노란색 길)
개념도상 휴양림은 공사중이라고 되어 있지만, 지금은 공사가 다 끝나고 등산로도 개방중이다.
구인월(월평마을)에서 오르는것보다 30분정도 빨리 오를수 있다고...
휴양림 안의 계곡을 따라 물소리들으며 걸어 올라간다.
휴양림안의 시멘트포장길이 끝나는 즈음에 사방댐이 있고, 거기를 지나면 산길에 접속하는데 길가에는 작은 꽃들이 뱅긋이 웃으며 멀리온 산객을 반겨준다.
늘 그렇게 느끼지만 미미한 존재감에도 그 자리에서 묵묵히 피었다 지고, 또다시 일어서는 ...
자기를 알아주는 존재에겐 있는대로의 아름다움을 전하는 이쁜꽃.
초반의 휴양림속 시멘트 길이 다소 길었던지 아내는 벌써 지친 기색이다. 아직은 갈 길이 먼데...
쭉쭉 뻗은 잣나무 숲아래를 걸으며 쳐다본 하늘이 그림같다.
도심의 봄은 어느덧 깊어 나뭇잎들이 검은빛으로 변하는 여름으로 가는데 이 곳은 이제 물이 오르는지 아직 연한 봄빛이다.
조릿대들의 키가 사람보다 더 크다.
우산나물 맞나?
이제 겨우 산중턱인데 벌써 지쳐버린 이사람 --- 갈 길이 걱정이다.
가파른 비탈이 시작되고 한발, 한발 내딛는 발걸음이 점점 무거워진다.
능선길이 코앞이라고 몇 번씩이나 바람을 잡아보지만 힘드는건 힘든거... 호흡이 거칠어진 아내, 가슴이 터질것 같단다.
안면을 바꿔버린산, 거친 바위길까지 나타나고...
조망은 없고 답답한 숲길이 계속 가파른 오르막으로 이어지니 지루하기도 하다.
입술을 꼭 다물어 버린 철쭉꽃들 --- 남해바다서 불어온 봄바람이 이제 여기쯤 다다르고 있는가보다.
나뭇가지 사이로 겨우 조망이 살짝 보이는 작은 바위에 올라 서본다.
개념도상에는 인월의 '황산'이라고 되어 있는데 맞는지 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절벽끝에 요긴한 전망바위가 하나 더있다. 지리산요금소쪽
줌으로 당겨보면 건너 산아래로 12번 '88고속국도'가 가로지르고 요금소로 가는 길이 보인다.
방향을 살짝 왼쪽으로 돌리면 황산아래 저수지도 보이는데...
줌 --- 개념도상 '옥계저수지"로 돼 있다.
9부 능선을 지날쯤 작은 돌탑이 있다. 아래로는 제법 멀어 보인다.
돌틈에 뿌리를 서려둔 노랑제비꽃
덕두봉 직전의 바위 --- 능선쪽엔 이제 막 어린애 입속에 돋아나는 하얀이같은 연초록 잎새들이 움트고 있다.
'구인월'에서 올라오는 길과 합류하는 곳
저 봉우리가 '덕두봉'이다.
바위위에 올라서서 바라보는 운봉면 방향
줌
삼각점이 있는 덕두봉 정상에서...
덕두봉에서 바라보는 천왕봉 방향 --- 오른쪽 끝부분이 천왕봉이다.
헬기장인듯...
평탄한 능선길에 서면서 아내의 표정이 한결 밝아진다. 손 흔드는 여유까지...
능선길 가에는 이제사 피어나는 현호색과 개별꽃이 지천이다.
산괴불주머니도...
그렇게 한 능선길을 돌아 오름길에 접어들어 쉬고 있으니 단체산객중에 안면 많은 한사람이 눈에 띈다.
'어! ~ ~ '
울산사는 고향친구다.
내 ~ 참, 이 친구를 여기서 만나다니... 세상 오래 살다보니 이런 일도 다있네...
놀랍고도 반가운 마음에 눈물이 날 지경이다.
같이 앉아서 한 컷
우리는 그렇게 바래봉 철쭉군락지까지 함께했다.
바래봉으로 가는 길에 왼쪽으로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천왕봉과 지리산 주능선 --- 백두대간의 시작이다.
주능선을 타고 온 끝에 막아선 반야봉 --- 그 오른쪽은 노고단
바래봉 가는 길에 지천으로 피어있는 얼레지(군락지다)
꽃말이'바람난 여인'이란다. 자세히 보면 치마를 걷어 올린듯하다.
양옆으로 얼레지가 예쁘게 핀 가운데로 길 걷고 있는 산객들
남쪽의 어지간한 산자락엔 벌써 다 피었다 지고 없을 꽃들이 여긴 이제 막 피어 오르고 있다.
봄산행이면 곧 초록의 연한 잎새가 온 산하에 터질듯 부풀어 오르는 신록과 꽃구경 아닐까?
올해는 봄을 두 번 맞는 기분이다.
설핏 부는 바람에도 온통 서러워 잎도 꽃도 얼룩진 얼레지..
새부리처럼 생긴 꽃몽우리 --- 꽃잎이 열리면 금방이라도 날아 갈듯하다.
여민 앞섶 단단히 그러쥐어도 감추지 못한 그리움은 눈밝은 햇볕탓...
망울맺는 병꽃
바래봉 직전의 조릿대 군락지
바래봉 직전의 낮은 봉우리
희미하게 보이는 천왕봉
저 앞이 바래봉 정상이다. 산객들이 많다.
인산인해다.
낚시하는 이들 '물반 고기반'이란다더니, 정상엔 발디딜 틈이 없다. 정상 표지대를 두고 다툼이 치열하다.
사람이 있건 없건 그냥 셔트를 눌러댄다.
'미어터진다'는 말이 딱 맞을거 같다. 산은 몸살을 앓고...
물론 나는 처음이다.사람 많은 산은 별로 가고 싶지 않다.
저 아래에서도 꾸역꾸역 수없는 산객들이 오르고 내린다.
왼쪽 멀리가 반야봉이고 오른쪽은 만복대에서 시작한 지리산 서북능선이다.
서북능선 저 쪽 '팔랑치'쪽 철쭉군락지에 약간 붉은빛이 보일뿐 철쭉은 아직 개화가 멀었다.
산자락 군데군데 철쭉들이 옹기종기 둘러 앉은 모습만 보일뿐...
줌 --- 철쭉군락지
바래봉를 내려서며...
운봉소재지 방향
줌
바래봉 삼거리로 내려가다 목초지 위에 앉아 점심을 먹는다.
(막걸리 한 잔과 친구가 가져온 '가죽' 장아찌 맛이 일품이었음)
바래봉 철쭉은 1970년대 호주에서 들여온 양떼를 방목했는데 그 양떼들이 수십년간 산지를 훼손했고 독성이 있는 철쭉은 먹지를 못해 살아남은 철쭉이 군락을 이룬 결과다.
지금 아래에선 철쭉제를 열지만 '생태복원'과 '철쭉보존'을 위한 찬반의견이 분분하단다.
식사후 바래봉삼거리로 내려서며 본 반야봉
많은 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 나무 그늘 아래서 점심 식사를 하고 있다.
건너편 바래봉으로 올라가는 나무들 속에도...
줌
반야봉을 배경으로 선 아내
바래봉 삼거리로 내려 서는 길과 서북능선상의 철쭉군락지로 가는 사람들
길가로는 산딸기 넝쿨들이 많은데 이게 생태복원의 신호탄이라네...
여기가 바래봉 삼거리다.
우리는 철쭉군락지쪽으로 갔다 다시 여기로 돌아와 운봉으로 갈 것이다.
조팝과 철쭉
돌아본 바래봉
바래봉으로 오르내리는 수많은 인파 --- 꽃반 사람반이다.
철쭉은 아직이다.
시어머니한테 한소리 들은 며느리마냥 빼족한 입술을 쳐닫고 있다.
다음주 쯤이면 어느정도 필 꽃봉오리를 바라보며 아쉬움을 달랜다.
저 꽃들이 활짝 피면 산은 온통 붉게 붉게 꽃으로 타오르겠지....
서북능선
저 ~ 멀리 천왕봉
다시 돌아본 바래봉
친구와 천왕봉을 배경으로...
날씨가 점점 희뿌옇게 변하더니 천왕봉과 주능선은 희미하다.
지리산 구석구석을 담아보려 욕심을 내 보지만 날씨가 도와주어야지...
팔랑치로 가는 길 --- 이쯤에서 울산친구와 아쉬운 이별을 한다.
친구는 부운재로가서 뱀사골입구로 간단다.
산철쭉과 철쭉
다시 바래봉쪽으로...
지리산에서 만난 J-3클럽 대구지부장과 함께...
다시 돌아온 바래봉 삼거리 --- 이제 운봉으로 내려간다.
바래봉삼거리에서 운봉으로 내리는 길은 이같은 인도블록으로 걷기가 다소 불편하다.
연간 20만명이 찾는다는데 오늘 그 절반정도가 아닐까 느껴진다.
내림길에 돌아본 바래봉
줌 --- 가운데 까만데가 바래봉이다.(산객들이 모여 있는 모습)
임도길을 버리고 산길에 들어선 곳에서 아랫쪽을 보며...
저 아래 천막을 치고 축제가 열리고 있는 철쭉주차장이 보인다.
줌 --- 산위에서 보면 그림같은 넓은 들풍경이 보는것만으로도 넉넉해진다.
거의 다 내려왔을 무렵 계곡에서 탁족도 하고...
지리산을 휘감은 계곡의 물은 차다. 잠시 발을 담그고 있으면 발가락 끝으로 와닿는 물기운이 찌릿찌릿하다.그만큼 피로는 싸악 날아간다.
산이 깊을수록 물은 맑고, 그리움이 깊을수록 우리는 애틋한 법
거의 다 내려왔다. 날머리가 가까워 보인다.
긴 겨울 인고의 세월을 견뎌 피어 오르는 꽃 --- 한 하늘이 열리고 있다.
구슬붕이
날머리에 선 이 사람 --- 오름길의 오만상을 찡그리던 그 사람인가?
허브공원에서 쳐다본 바래봉
줌 --- 중앙이 바래봉이다.
허브공원 안의 꽃들
여느 축제장처럼 먹거리 장터도 있고...
꽃과 꽃
또, 꽃과 꽃
주차장에는 철쭉꽃 찾아온 사람만큼 많은 차들이 서있다. 수많은 승용차와 관광버스들... 주차장도 미어터진다.
한참을 헤메고 헤메다 결국 가이드한테 전화까지하고 나서야 가까스로 우리차를 찾았다.
대개 무슨무슨 철이라면 그 곳을 피하는게 내 삶의 방식이다.
오늘 무슨 바람이 불어 여기까지 온 것인지...
다만 지리산은 지리산이다.
산넘어 또 산일지라도 꿈꾸는 자의 태양은 뜨나니...<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