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

호거대

자유의 딱따구리 2010. 12. 7. 13:48

2010년 12월 4일 토요일

겨울의 문턱 --- 바람에 혹은 세월에 힘없이 떨어져 뒹구는 낙엽들이 세월의 무상함을 전해주는 계절

잎을 떨구어 버린 나뭇가지들도 앙상한 몰골로 섰다.

핏빛으로 타오르던 가을날의 붉디 붉은 화려함은 어디로 가벼렸는지 지난날의 영화가 제행무상이다.

아내와 가볍게 한바퀴 돌자고 나선길이 운문사가 있는 호거대.

집 나설때 산이야기는 꺼내지 않았으므로 둘다 운동화 차림이다.

운문사 공영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계곡을 건너 조금만 상류쪽으로 가보면 호거대로 바로 오를수 있는 들머리 시그널들이 보인다.

 

계곡물에는 살얼음이 살짝 얼었다.

들머리

 

처음의 길은 순하다. 해가 만드는 그림자를 따라 천천히 걷는다.

고도를 조금 올리자 집채만한 바위들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건축물은 자연이라고...

 

소나무 사이로 건너 지룡산 줄기(신선봉- 복호산)의 암봉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발아래 출발지 주차장이 보이고 그위로 지룡산이 버티고 섰다.

 

운문사로 들어 가는 길 --- 저 논의 끝자락에 운문사가 자리해 있다.

따스한 햇살이 내리쬐는 바위위에서 아래 풍광을 보며 잠시 휴식

물도 없다, 베낭에 지난 산행때 남은 포도즙과 배즙이 하나씩 들었다. 둘이 나눠 먹는다.

 

 

저 위로 해들게봉이 보이고...

잘게 깨진 돌길을 걷는게 운동화를 신고는 쪼금 부담스럽다.

메마른 날씨, 거친 산길에 아내는 말을 잃어 버렸다.

나의 꾐에 빠져 '오늘도 속았다'는 기분이 드나보다. 늘 이런식이다.

산 오를때 아내의 입은 손가락 한마디쯤 튀어 나온다. 그렇지만 정상에서나 그 이후에는 늘 배시시 웃고 있다.

 

 

늠름한 기상, 힘이 넘쳐 보이는 소나무들이 여기도 있다.

사시사철 푸르런 소나무를 보며 나를 알기 위해 찾고, 나를 다지기 위해 찾는 山

멀리는 옹강산 줄기다.

추수가 끝난 황량한 들판 (장군평) --- 기계가 지나간 그 자리에 묘한 문양이 남겨졌다. 

산길 저위로 호거대가 살짝 보인다.

걷고 또 걸으면서 헛된 마음을 비우면 산은 그 빈자리를 채워줄 것이다.

 

 

 

거친 돌들의 길 --- 산길이란 원래 힘이 들수록 그 재미를 느낄수 있는 법이다.

 

건너편 방음산 능선

짧은 산길인데 아내는 자주 주저 앉는다.

 

옹강산과 지룡산

 

 

쏟아지는 햇살아래 가득한 가스로 부연가운데 멀리 억산 깨진바위가 눈에 들어 온다.

 

 

 

건너편 지룡산과 삼계1봉(829m)

 

건너 해들게봉

죽어서도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고사목 --- 生千死千

산은 오를때마다 다른 모습을 보여주니 자꾸만 뒤로 돌아보게 된다.

호거대는 손내밀면 잡힐듯 가까이 다가왔다.

 

 

긴 돌길의 끝에서 만난 거대한 바위 --- 호거대 아래에 섰다.

숨을 고르며 바위 아래에 서면 가슴이 탁 트이는 기분을 맛볼수 있다. 흐린 가운데 가지산이 보인다.

줌 -- 가지산

 

 

 

 

드디어 호거대 정상 --- 가지산을 배경으로...

호거대, 장군봉, 등심바위(혹, 등선바위)... 이름이 가지각색이지만 상관없고... 다만,

바위위에 서서 발아래로 펼쳐지는 풍광을 보면 벅찬 가슴을 가눌수가 없다.

올라올때의 힘겨움은 한순간에 씻겨 날아갈 것이다.아내의 입도 쪼매 들어간듯하고...

이번엔 억산을 배경으로...

해들게봉쪽으로....

이쁜 새 한마리... 계속 우리곁을 맴돌고 있다.

주차장과 지룡산을 배경으로...  빨려 들것만같은 장군평

영남알프스의 북쪽 자락들이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대비지와 귀천봉, 그리고 억산.. 북릉, 구만산, 육화산....

 

 

가지산에서 쭉 내려오면 운문북릉끝으로 천문지골이고 큰골, 못골... 그 끝자락쯤에 운문사가 있다.

(지난 여름 운문산갔다가 내려오며 고생한 기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는데 실없이 웃음만 나온다.

겨울에 한 번 더 가봐야지...)

 

호거대를 내리며...

 

 

 

가지산과 운문산

 

 

호거대를 떠나며...

아내의 표정은 정상으로 돌아왔다.수북이 쌓인 낙엽길을 걸으며 발걸음이 가벼워졌다. 내 발걸음도...

 

 

내려 오면서도 눈길은 자꾸만 호거대쪽으로 돌아보게 된다.

이상하게 뻗은 나무가지에 올라 앉아서...

절벽 아래로 보이는 풍광

 

호거대를 다시 돌아보고...

억산쪽으로...

돌탑이 있는 명태재로 내려서고...

명태재에서 보이는 팔풍재와 억산

명태재에서 주차장쪽으로 내려서며 돌아본 호거대

다른 특별한 조망이 없으니 자꾸만 호거대쪽으로 눈길이 간다.

 

발길이 닿을때마다 낙엽들은 바스락 바스락 고운 음악으로 발걸음을 가볍게 해주네...

사면을 타고 내려오면서 본 호거대

내려오는 길은 완전히 갈지자의 길의 연속이다.

거꾸로 오른다면 조금은 지루하게 느껴질 오름길이 될 것이다.

 

 

 

낙엽이 덮힌 돌길을 조심조심 내려오면...

겨울문턱의 갈색들 사이에 푸른빛을 간직한 조릿대들이 나즈막이 자리하고 있다.

숲이 무성한 여름이라면 조금은 성가실 칡넝쿨이 얽힌 산길을 헤집으면...

계곡의 끝자락이 보이기 시작하고...

가뭄으로 말라있는 지계곡을 한번 건너면 ...

앞으로 지룡산 줄기가 보이는 민가쪽으로 나서게 된다.

 

민가앞을 나서며 돌아본 호거대

운문사 입구 솔숲옆으로 흐르는 운문천을 건너면...

 

 

출발지이자 도착지인 운문사공영주차장이다.

나에게 산은 무슨 의미인가???

번잡함이 싫은데... 일상속의 복잡한 기억들을 내려놓고 싶은데...

 

산꼭대기에 올라 앉아 세상사 풍파들 모두 내려놓고, 파도처럼 일렁이는 산너울들만 바라보면 뭔가 새로운 에너지들이 가슴 저 아래에서 꿈틀거린다. 산은 내게 그렇게 다가오는 것이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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