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교산

봉좌산가는길

자유의 딱따구리 2008. 5. 25. 09:22

2008년 5월 24일 토요일

아침부터 찌뿌둥하던 하늘이 산에 갈려니 보슬비를 뿌리기 시작합니다.

일기예보는 분명 오후부터 갠다고 했으니 일단 믿고 집을 나섭니다.

그러나 근래 기상청 --- 믿지 못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점점 비가 많이 내리는데 참 난감합니다.

산행목적지 들머리에 서니 빗줄기가 제법 굵어져 돌아가야하는지  판단이 잘 서질 않습니다.

'에이 ~ 모르겠다, 여기까지 와서 그냥 돌아설수는 없지...'

채비를 하고 산길에 발을 디뎌봅니다.

 낙동정맥길을 잇는 이리재입니다.

포항시 기계면과 영천시 임고면을 가르는 경계이기도 합니다.

간간히 차들이 한 대씩 지날 뿐 한적하기만 합니다.

 

산안개가 피어 신비로운 광경을 연출합니다.

잎들은 푸르러져 녹음이 짙어 가는데 하늘을 쳐다볼 수가 없습니다. 

숲으로 덮인 산길에 빗소리는 들려도 가끔 굵은 물방울만 떨어질뿐 비라고 느끼고 맞는것은 없습니다.

 빗줄기는 점점 굵어지는지 나뭇잎들이 머금었던 빗물이 후두둑 떨어질 때마다 옷을 적십니다.

물론 길섶에 도사리던 나뭇잎들도 마찬가지로...

 

안개도 더욱 짙어져 몇발짝 앞도 내다볼 수가 없을 정도입니다.

쉼없이 걷는 혼자만의 길이라 어느 정도 왔는지 등벽이 축축해지고 이마에서도 땀인지 빗물인지는 몰라도 구슬같은 방울이 흘러 내립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꿈꾸는 도마'님의 시그널

 비는 쏟아져도 예쁜 꽃들은 절대 놓칠수가 없습니다.

 도덕산과 봉좌산의 갈림봉입니다.

낙동정맥을 종주한 수많은 산꾼들의 표지기가 비에 젖은채 매달려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기도원 갈림길입니다.

산토끼 한마리가 놀라서 도망가는데 저보다 내가 더 놀랍니다.

한적한 산길이 저도 예상 못했던 인간이고, 나도 뜻밖의 동물을 만납니다.

그나마 멧돼지가 아니라 다행이라는 ...ㅎㅎ

 봉좌산 입구에 다다릅니다.

몸은 흠씬 적셔 비맞은 생쥐꼴에 다름아닙니다.

 입새의 전망대도 그렇고 막상 정상에 섰지만 가득한 운무로 조망은 아예 기대할 수가 없네요.

맑은 날이면 기계면 전체를 넘어 포항시가지까지 조망이 가능한 곳인데 아쉽습니다.

분명히 저 아래로는 대구 --- 포항 고속도로위로 차들이 시원하게 내달리고 있을텐데...

 

정상에서 셀카를 한 컷 찍긴 했는데 차마 여기다 올리지는 못하겠습니다.

비맞은 생쥐꼴이 바로 이런거 아닐까요???

 

 안타까운 마음을 달래며 미끄러운 바윗길을 조심스레 이곳 저곳 왔다갔다할 무렵 전화벨이 울립니다.

친구의 알콜기 가득한 목소립니다.

"어디고?"

"산이다. 근데 왜?"

"물회 먹자고..."

목소리 하며 현재 상황이 한 눈에 그려지는 모습입니다.

하긴 나도 마음이 두쪽이었습니다.

돌아갈까?, 아님 이대로 어래산거쳐 옥산서원까지 가버려...

그런데 울고 싶을때 뺨을 때려 줍니다.

"그라머 내 갈때까지 기다리라."

"언제 오는데..."

"지금 몇 시고?"

"한 시..."

"그라머 두 시까지 가께..."

"알었다. 내리오거덩 전화해라..."

전화를 끊고보니 시간은 사실 빡빡합니다.

생쥐꼴이 되어 산길을 내달립니다.  물을 먹어 묵직하게 흘러내리는 바지의 양옆구리를 움켜잡고 거의 산악 구보보다 빠른 속도로...

 

 내려오는 길에 만난 두꺼비

 30분만에 산길을 달려 내려왔습니다.

빗줄기는 더욱더 거세져 여름 소나기 같아져 보입니다.

 

물회집에서는 점심으로 친구 해장겸 둘이서 간단히 소주 3병

 

산안개로 조망은 없어도 우중산행 --  그런대로 괜찮아 보입니다.

여러모로 아쉬움이 많이 남는 산행이었습니다. 담엔 꼭 옥산서원까지 가봐야 할텐데...<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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